![-국제 논바이너리의 날(International Non-Binary People's Day) 기념 논평-[경계를 허물며, 저항하자. 해방으로.]7월 14일, 오늘은 국제 논바이너리의 날(International No...](https://img5.evepla.com/551/170/1166476745511708.jpg)
14/07/2025
-국제 논바이너리의 날(International Non-Binary People's Day) 기념 논평-
[경계를 허물며, 저항하자. 해방으로.]
7월 14일, 오늘은 국제 논바이너리의 날(International Non-Binary People's Day)입니다.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회는 성별 이분법의 틀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모든 논바이너리와 연대하며, 외변에 놓인 삶들이 지닌 고유한 존엄성을 다시 한번 세상에 선언합니다.
논바이너리란 사회가 부여한 성별 이분법을 넘어, 스스로의 진정한 성별 정체성을 정의하고 그 존재로써 기존 규범에 도전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정의하고, 대명사를 선택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그 균열을 넓혀 나갑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개의 상자에 가두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성별 표현을 넘어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정체성까지 획일화하며, 그 경계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삶의 형태를 부정하고 지워왔습니다. 성별 이분법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어, 수많은 삶을 지우고, 배제하며, 침묵시키는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여성도, 남성도 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스펙트럼 안의 성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다층적인지, 인간의 정체성이 얼마나 풍부하고 복합적인지를 삶으로 몸소 증명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취급하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하려 합니다.
우리의 삶은 범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논바이너리들은 이러한 범주에 저항하는 "선언적 삶"을 살아갑니다. 두 가지로 양단된 성별 구분에 속하지 않기를 선택한 삶은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때로는 방어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개인적 고충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성별 규범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실존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적 차별의 결과입니다.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양분된 화장실 앞에서 논바이너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결심하여 화장실 하나를 이용하는 것조차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성별불쾌감(gender dysphoria), 시선과 의심, 때로는 위험에 노출되어야 합니다. 공식 문서의 성별란은 이들의 정체성을 담을 수 없는 좁은 틀로만 존재합니다. 의료진 앞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반복되는 설명과 해명. 이들의 "범주 바깥의 인생"은 사회의 몰이해와 배제 속에서 더욱 고립됩니다.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자아란 무엇일까요.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맞추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주체성이 과연 온전한 것일 수 있을까요? 모든 이의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의 존엄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대 국회, 21대 국회를 거쳐 22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표류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성소수자 인권을 정치적 계산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혐오 선동에 편승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인권을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마저 혐오를 '다양한 의견'으로 포장하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권리는 시혜가 아님에도, 성소수자들은 성별 정체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권리, 차별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안전한 공간에서 존재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차별을 차별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에서, 논바이너리들은 어디에 기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외면하고, 사회가 침묵하더라도 논바이너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주변으로 밀려났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삶들이, 오히려 중심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부당한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서로를 지지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당사자들의 연대가 있습니다.
논바이너리의 자아실현은 고정된 성별 규범을 해체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존재 방식의 실천이자,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향한 여정입니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한 궤적을 살아갑니다. 이분법이라는 상자 바깥에서도 그 삶을 살아나가는 논바이너리들을 더 이상 지우려 하지 마십시오. 존재는 증명을 요하지 않으며, 타인의 이해나, 허락 또한 구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정체성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성별 정체성의 다양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부담을 지지 않는 사회. 모든 개인이 차별 없이 교육받고,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성중립 화장실과 같은 '경계를 허무는 공간'이 특별한 배려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사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변화의 시작점이 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다양한 성별 정체성 인정 법률 마련, 그리고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성별 다양성을 포괄하는 정책과 문화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국제 논바이너리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지워지고 침묵당했던 존재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는 저항의 날입니다.
가장 주변화된 이들의 해방 없이는 그 누구의 진정한 해방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논바이너리들의 투쟁은 모든 이의 자유를 위한 투쟁입니다.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는 이들의 용기는 모든 이에게 더 넓은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해방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회는 논바이너리와 함께 서서, 규범을 넘나드는 퀴어한 삶의 양식들을 비추며, 모든 존재가 각자의 고유한 궤적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향한 행진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모든 존재가 존중받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나아갈 것입니다.
2025년 7월 14일
제주퀴어프라이드 조직위원회